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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by 전통놀이채애현 202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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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보이는 것
23세에 홀로 되신 어머니가 딸 하나를 희생적으로 키우면서 유학도 보냈다. 그녀는 성인이 되어 저명한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어머니의 권면을
로 고등학교 이후 떠났던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되었다.

그녀가 잠시 교회를 둘러보다가 실망감이 들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험담을 하고, 
장로가 다가와서는 처음 본 자신 에게 아들 대학 입학을 청탁하고
회의실에서는 다투는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녀는 화가 나서 어머니의 손을 끌며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옆에서 조용하던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 너는 오늘 하루 교회에 와서는 참 많이도 봤구나."
이 말을 들은 딸은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 생각 없이 교회에 다닌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보는 것과 자신이 보는 수준은 하늘과 땅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며 살아간다.
그러나 누구든 자기의 수준만큼 만 보이는 것이다.

대게 내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것이다.
먼 것은 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인
다.

자신에게 자꾸 교만이 보인다면 
내가 교만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 다.
자꾸 거짓이 보인다면 내가 거짓 을 가까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기꾼의 눈에는 사기꾼이 가장 잘 보인다.
섬기는 사람옆으로 가서  보라
그러면 섬김만 보일 것이다.
기도의 사람 옆으로 가서 보라.
기도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인격의 변화는 
믿음의 발걸음에 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볼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녹아서 
작아지는 비누와 같다.
비누는 사용할 때마다
자기 살을 녹여서 작아지게 만들다 끝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때마다 비누는 상대의 더러움을 없애준다.
만일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자기희생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와 같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자기 것을 아끼려는 사람 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다."
(미,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

사람의 삶 중에 희생하는 삶만큼 숭고한 삶은 없다.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인간관계는 어떤 것이든 아름답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고,
동료애가 그렇다.

비누처럼 
나를 희생해서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삶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는 어려운 삶이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 면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마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이 아니다.

탈무드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우는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 면서 사는 사람이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한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 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 다" (인도, 타고르)라고 말했듯이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빌헤름 웰러)

행복은 
소유에 정 비례하지 않는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지옥과 같다.
감사가 없는 가정은 메마른 광야와 같다.

위의 글 참고자료 : 지혜로운 삶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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